나의 첫 호출부호 JA6KOR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 에피소드 1

나도 신호를 내고 싶다

대부분이 그랬듯이 나도 SWL로 햄생활을 시작했다. 수신을 하고 SWL 카드를 보내서 햄들의 QSL 카드를 받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원거리의 신호를 듣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국내국의 신호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국내국의 숫자가 워낙 적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일요일 오전에 잠깐 국내국의 신호를 들으면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유명 아나운서보다도 더 멋지게 들렸다. 나도 저렇게 송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때는 시험 보기가 쉽지 않았다. 시험이 자주 있지도 않았고 지방에서는 더욱 기회가 적었다. 시험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도 알지 못했다. 참고할 만한 자료는 프로 통신사 면허를 준비하는 책 몇 권이 전부였다. 겨우 시험에 응시해서 낙방이라도 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 지 몰랐다. 그때 시험에 떨어져서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다시 햄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시험을 기다리다가 진주에 갔을 때 HM5JF님에게서 송신기 회로를 얻었다. 6BA6 진공관으로 발진을 하고, 6AQ5 진공관으로 증폭을 해서 대략 5W 정도의 출력을 내는 전신 송신기였다.

1981년까지 한국의 아마추어무선국 프리픽스는 HM 이었다.

송신기 제작

가장 구하기 어려운 부속은 발진을 위한 크리스탈이었다. 주말에 학교를 마치면 선박 무선장비 수리와 부속을 취급하는 가게에 가서 부속을 찾아 보았다. 큰 나무상자 속에 여러 가지 부속이 섞여 있었는데, 손을 집어 넣고 사각진 부속을 찾아서 주파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부속을 많이 산다면 전부 엎어놓고 찾을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면 손은 금방 시커멓게 되었다.


FT-243 형 크리스탈. 사진과 비슷한 모양이다.

가게 주인은 계속 눈치를 주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부속을 산다고 하더라도 비싸게 받을 수도 없으니 귀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끈질기게 그 가게를 드나들었다. 그렇게 몇 주를 다닌 끝에 드디어 햄밴드용의 크리스탈 몇 개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알루미늄을 접고, 엉성하게 구멍을 뚫어서 부속을 조립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선만 얼기설기 연결한 수준이었다. 조립을 마치고 송신해 보니 수신기에서 신호가 수신되었다. 수신기의 안테나를 제거했는데도 막강한(?) 신호가 수신되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송신기는 대략 위의 사진과 비슷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만 오면 송신기의 키를 눌러서 수신해 보았다. 불법 송신이었다. 처음에는 낮은 출력으로 조심하면서 하다가 점점 최고 출력으로 송신하게 되고, 나중에는 주파수 상황도 신경쓰지 않고 키를 누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슬슬 간이 붓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신호를 내는데 교신은 못하랴…

불법 교신

겁이 없어진 나는 교신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호출부호를 만들어야 했다. HM 호출부호를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국내국은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서로를 거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누군가 전신으로 신호를 내면 자작품 특유의 음색과 함께 수동키의 키잉 특징이 있기 때문에 CQ만 들으면,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전파감시국의 감청도 심했다.

그래서 가까운 일본의 호출부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니, 만들기로 했다. 부산과 가까운 후쿠오카로 위치를 정하고 프리픽스는 JA6, 서픽스는, 정말 겁도 없이, KOR로 선택했다. JA6KOR. 이것이 나의 첫 호출부호였다. 이름은 Sato로 정했다. 그리고 전신 교신의 순서를 종이에 적어서 벽에 붙여두었다.

영문 교신 : 일본국끼리 교신할 때도 영문으로 교신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본어의 전신 부호를 익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영문으로만 교신하는 햄들이 더 많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리포트, 이름, 위치 등 간단한 내용만 교환한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송신을 시작하였다. CQ CQ CQ DE JA6KOR….. AR

한 번만에 응답이 올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출력도 작았으니까. 대략 10번쯤 송신했을 때 응답이 왔다. JA6KOR DE J….. 상대의 호출부호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제대로 수신했는지조차 기억이 없다. 땀이 나고 손이 떨렸다.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교신을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적인 허가를 받은 사람도 첫 교신에서는 긴장하는데, 남의 나라 호출부호를 만들어서 불법으로 송신했으니 그 긴장도는 가히 최고조였다. 긴장했던 만큼 첫 교신의 기쁨 또한 대단했다.

“안테나를 떠난 나의 신호가 바다를 건너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나라까지 갔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한편 순진한 마음에, 혹시라도 불법 운용이 들통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쁜 짓은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듯이, JA6KOR의 신호는 그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송출되었다. 이와 함께 전신 실력 또한 빠르게 향상되었다.

그때 햄을 시작했던 분이라면 아마 한 두번 불법 교신을 안 해본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은 불법 운용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격시험이 자주 없었고, 무선국 개설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에피소드를 통해 말씀드리는 것이니 재미로 가볍게 읽으셨기 바란다.

불법무선국을 흔히 UC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잘못된 영어다.
undercover의 사전적 뜻은 “비밀 또는 위장 첩보 활동을 하는 요원"을 말한다.
미국햄에게 UC의 의미를 아는지 물었더니, ‘University of California’를 말하느냐고 되물었다.
영어로 불법무선국은 ‘pirate’이라고 한다.
W6KP와의 교신 듣기

Last modified May 20, 2026: episode (351e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