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으로 듣는 로동신문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 에피소드 4
간첩 신고
우리는 항상 북한과 긴장 관계에 있다. 지금도 북한은 수시로 미사일을 뻥 뻥 쏘아올려서 주변 나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 한국에서 사는 것은 정말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다.
1970년대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한 덕분에 반공에 대한 인식이 철저했다. 가끔씩 간첩이나 무장공비 사건이 일어났으니 일반인들도 북한의 존재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반공 의식은 우리의 취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마추어 무선에서 빠질 수 없는 ‘무전기, 모오스, 안테나, 단파’ 이런 단어들은 전부 ‘간첩’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었다. 간첩 신고 홍보물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신고 포상금도 상당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은연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도 저녁 늦게까지 수신기 앞에 앉아 있었다. 교신은 제대로 안됐지만 수신기는 계속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잘 안 들리면 스피커에 귀를 갖다대고 온통 그 신호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구둣발채 들어온 서너명의 순경들이 나에게 칼빈총을 겨누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었다.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나를 보는 순경도 놀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까까머리의 학생이 앉아 있으니 이상했을거다.
아버님이 오셔서 무선국 허가장을 보여주고, 우유 한 잔을 대접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사건이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신고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늦은 밤에 모오스 소리가 들리니 간첩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로동신문
그전에는 단파방송도 많이 들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공, 소련의 한국어 방송 그리고 북한 방송도 자주 들었는데, 그 일을 겪은 후로는 그런 방송은 듣기가 겁이 났다. 북한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라고 알고 있었다.
송신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교신은 잘 안되고, 그러다보니 교신보다는 수신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7MHz는 근거리만 들렸지만, 14MHz나 21MHz에서는 원거리 신호가 많이 들려서 수신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수신기를 대충 돌리는 것이 아니고 밴드의 아래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신호를 체크했다.
21.100~21.150MHz에서는 느린 전신으로 교신하는 초보 무선국이 많았다. 느리지만 영어로 래그츄를 하는 사람도 있어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주파수 부근에서 상당히 강한 신호가 들렸다. 속도도 제법 빨랐다. 기본적으로 빠른 속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무지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한참을 헤맸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고 한글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21MHz에서 국내국의 신호를 들은 적이 없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국내국 신호가 들려서 너무 반가웠다. 한글 수신이 잘 안되던 때라 정확한 해독은 어려웠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들리는 단어가 이상했다. ‘김일성’, ‘수령’ …… 이런 단어들이 들렸다. 얼른 볼륨을 낮추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신호는 최소 1시간 이상 계속 되었다.
지난 번 사건도 있고 해서 겁이 났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뭔지 궁금해서 계속 다이얼을 그 주파수로 돌리게 되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전 시간에 1~2시간 정도 수신되었다. 상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송신만 하는 신호였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만 수신했다. 계속 수신하면서 조금씩 한글 수신 실력도 나아져서, 송신 내용이 로동신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듣지 않게 되고 언제부터인지 신호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 신호를 어디서, 누가, 왜, 송신했는지 알 수가 없다. 21MHz는 근거리가 스킵되기 때문에 그 정도 신호였다면 500~1,500km 거리가 아니였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한글 모오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신호에서 사용한 한글 모오스와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모오스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ㅐ’와 ‘ㅔ’라는 복합모음을 하나의 부호로 사용하지만, 그 신호에서는 ‘ㅐ’를 ‘ㅏ’와 ‘ㅣ’로 분리해서 송신하고 있었다.
기록을 찾아보면, 최초에 한글 모오스를 개발했을 때는 모든 복합모음은 기본모음으로 하나씩 분리해서 사용했다. 즉, ‘ㅐ’를 ‘ㅏ’와 ‘ㅣ’로 분리해서 사용했다. 로동신문의 그 신호처럼 말이다. 복합모음 중에서 ‘ㅐ’와 ‘ㅔ’를 하나의 부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라고 한다. 최소한 1960년대에는 이미 지금의 한글 모오스가 정착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중후반에 수신한 신호에서 아직까지 옛날 방식의 한글 모오스를 사용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북한의 모오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은 언어나 관습 등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모오스도 처음 그대로의 형태를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