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은 사랑을 싣고
에피소드 7
한국인 단독 요트 기록
강동석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가?
1991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단독 요트 태평양 횡단이라는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백인들의 독무대인 바다에 뛰어들어 한국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지만 큰 사건이었다. 요트는 해군사관학교의 해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영구 보존되고 있을만큼, 그때는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그 이후 1992년에 LA에서는 흑인폭동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교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었다. 강동석씨는 또 다시 요트 항해를 계획하였다. 교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싶어서 이번에는 세계 일주를 계획하였다. 1994년 1월에 출발하여 3년 5개월만인 1997년 6월에 한국인 최초로 단독 요트 세계일주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요트에서 햄 교신
강동석씨가 항해를 할 때 해상통신장비도 사용하였지만 아마추어무선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KC6OWH/MM이라는 호출부호로 HAM 활동도 하였다. 나와는 1차 항해인 태평양 횡단을 할 때 많은 교신을 하였다.
태평양 횡단은 LA에서 출발하여 하와이를 거쳐 부산으로 항해하였는데, 하와이까지는 주로 LA 한인햄들과 교신하였고, 하와이를 지나면서 한국과의 교신이 많았다.

< 강동석씨 저서, “그래 나는 바다에 미쳤다"에서 발췌 >
당시에 나는 집과 회사가 아주 가까워서, 짧은 시간이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교신이 가능하였다. 집이 광안리 바닷가와 가깝고 바다쪽으로는 확 트인 위치였으며 빔안테나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태평양과는 교신이 잘 되었다.
국민학교 담임 찾기
거의 매일 점심때 30~40분 정도 교신하였다. 14MHz와 21MHz로 교신하였는데 서로의 리포트가 55~57 정도여서 대화하기에 충분하였다. 요트나 항해와 관련된 대화가 많았지만 그 외에도 이민생활이나 가족, 친구 등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강동석씨는 한국어를 듣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었지만, 말하기는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교신을 하면서 짧은 시간에 한국어 실력도 금방 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인가 말씨에 경상도 사투리가 느껴져서 물었더니, 고향이 경상도이고 이민 가기 전에 부산에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민학교 5학년때의 담임 선생님을 참 좋아했는데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홀로 망망대해에서 힘든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여선생님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찾을 수 있는지 한 번 알아 보겠다고 하였다. 하루 휴가를 내고 강동석씨의 모교인 청룡국민학교를 찾아갔다. 교감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옛날 서류를 확인하기도 하고 교육청에 전화도 하면서 수고해 주셨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찾았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국민학교에 근무한다고 하면서 직접 전화를 하여 바꿔주셨다.
10년이 지난 일인데도 선생님은 강동석씨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요트와는 무전기로 교신하고 있는데 전화를 통하여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전화기/무전기 통화
약속한 날, 교신보다 일찍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2way 교신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말이 끝나면 “OVER” 라고 말해야 하는 등 교신 방법을 알려드렸다. 전화와 무전기를 서로 연결하려면 폰패치라는 장치가 있으면 편리하지만 당장 장치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들으면서 수동으로 PTT를 눌러줘야 했고 소리의 크기도 적절히 조절해야 했다. 또한 이렇게 통신 내용을 제 3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불법교신에 대한 책임은 나 혼자 감당하면 되기 때문에 감수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교신이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였다. 양손에 전화기와 마이크를 들고 있던 나의 손으로도 울컥하는 감정이 전해지면서 양손이 떨렸다. 두 사람은 그동안의 소식을 간단히 교환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교신을 마쳤다. 그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직접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동석씨가 부산 요트계류장에 도착하였을때 회사 일 때문에 나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쯤되면 대부분은 이 이야기와 글 제목의 연관성을 짐작하겠지만 세대가 다른 분들에게는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TV는 사랑을 싣고
K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중에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4년에 첫 방송을 하였고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약 16년 동안이나 방송되었다. 배우, 가수 등 유명인의 지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창시절의 은사, 군복무때의 동료, 또는 첫사랑 등을 찾아주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의뢰인과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강동석씨의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아 준 것은 “TV는 사랑을 싣고"보다 3년이 앞섰지만, 그 과정은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의 무선판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제목을 “무선은 사랑을 싣고"라고 해 보았다.
강동석씨와의 교신 그리고 그 교신을 통하여 옛날 인연을 찾아줄 수 있었던 일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