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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5KY

국민학교때(1960년대말) 소년중앙이라는 어린이잡지의 부록(만화)을 보고 아마추어무선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가정에서는 전화조차 흔치 않았던 시절에 수천만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방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꿈같은 취미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1976년에 무선국을 개설하였으며, DX, CW, 안테나제작, 디지털통신(Echolink, DMR, DSTAR, FreeDV), 리모트 등 아마추어무선의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동안 DX에 빠져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DXCC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아래의 에피소드는 개국 초기에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1 - 나의 첫 호출부호 JA6KOR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나도 신호를 내고 싶다

대부분이 그랬듯이 저도 SWL로 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신을 하고 SWL 카드를 보내서 햄들의 QSL 카드를 받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원거리의 신호를 듣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국내국의 신호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국내국의 숫자가 워낙 적었기 때문이었죠.

어쩌다 일요일 오전에 잠깐 국내국의 신호를 들으면 너무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유명 아나운서보다도 더 멋지게 들렸습니다. 나도 저렇게 송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때는 시험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자주 있지도 않았고 지방에서는 더욱 기회가 적었습니다. 시험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참고할 만한 자료는 프로 통신사 면허를 준비하는 책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겨우 시험에 응시해서 낙방이라도 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 지 모릅니다. 그때 시험에 떨어져서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다시 햄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시험을 기다리다가 진주에 갔을 때 HM5JF님에게서 송신기 회로를 얻었습니다. 6BA6 진공관으로 발진을 하고, 6AQ5 진공관으로 증폭을 해서 대략 5W 정도의 출력을 내는 전신 송신기였습니다.

1981년까지 한국의 아마추어무선국 프리픽스는 HM 이었습니다.

송신기 제작

가장 구하기 어려운 부속은 발진을 위한 크리스탈이었습니다. 주말에 학교를 마치면 선박 무선장비 수리와 부속을 취급하는 가게에 가서 부속을 찾아 보았습니다. 큰 나무상자 속에 여러 가지 부속이 섞여 있었는데, 손을 집어 넣고 사각진 부속을 찾아서 주파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부속을 많이 산다면 전부 엎어놓고 찾을텐데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손은 금방 시커멓게 됩니다.


FT-243 형 크리스탈. 사진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가게 주인은 계속 눈치를 줍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부속을 산다고 하더라도 비싸게 받을 수도 없으니 귀찮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끈질기게 그 가게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다닌 끝에 드디어 햄밴드용의 크리스탈 몇 개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알루미늄을 접고, 엉성하게 구멍을 뚫어서 부속을 조립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선만 얼기설기 연결한 수준입니다. 조립을 마치고 송신을 해 보니 수신기에서 신호가 수신됩니다. 수신기의 안테나를 제거했는데도 막강한(?) 신호가 수신되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송신기는 대략 위의 사진과 비슷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만 오면 송신기의 키를 눌러서 수신을 해 봅니다. 불법 송신입니다. 처음에는 낮은 출력으로 조심하면서 하다가 점점 최고 출력으로 송신하게 되고, 나중에는 주파수 상황도 신경쓰지 않고 키를 누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슬슬 간이 붓기(?) 시작합니다. 불법으로 신호를 내는데 교신은 못하랴…

불법 교신

겁이 없어진 저는 교신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호출부호를 만들어야 합니다. HM 호출부호를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국은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서로를 거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전신으로 신호를 내면 자작품 특유의 음색과 함께 수동키의 키잉 특징이 있기 때문에 CQ만 들으면, 저라도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또한 전파감시국의 감청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일본의 호출부호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만들기로 했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후쿠오카로 위치를 정하고 프리픽스는 JA6, 서픽스는, 정말 겁도 없이, KOR로 선택했습니다. JA6KOR. 이것이 저의 첫 호출부호입니다. 이름은 Sato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신 교신의 순서를 종이에 적어서 벽에 붙여두었습니다.

영문 교신 : 일본국끼리 교신을 할 때도 영문으로 교신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일본어의 전신 부호를 익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영문으로만 교신하는 햄들이 더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리포트, 이름, 위치 등 간단한 내용만 교환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송신을 시작하였습니다. CQ CQ CQ DE JA6KOR….. AR

한 번만에 응답이 오지는 않겠죠. 더구나 출력도 작았으니까요. 대략 10번쯤 송신했을 때 응답이 왔습니다. JA6KOR DE J….. 상대의 호출부호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도 제대로 수신했는지조차 기억이 없습니다. 땀이 나고 손이 떨렸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교신을 끝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상적인 허가를 받은 사람도 첫 교신에서는 긴장을 하는데, 남의 나라 호출부호를 만들어서 불법으로 송신을 했으니 그 긴장도는 가히 최고조였습니다. 긴장했던 만큼 첫 교신의 기쁨 또한 대단했습니다.

“안테나를 떠난 나의 신호가 바다를 건너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나라까지 갔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한편 순진한 마음에, 혹시라도 불법 운용이 들통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쁜 짓은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듯이, JA6KOR의 신호는 그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송출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전신 실력 또한 빠르게 향상되었습니다.

그때 햄을 시작했던 분이라면 아마 한 두번 불법 교신을 안 해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이 글은 불법 운용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시험이 자주 없었고, 무선국 개설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에피소드를 통해 말씀드리는 것이니 재미로 가볍게 읽으셨기 바랍니다.

불법무선국을 흔히 UC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잘못된 영어입니다.
undercover의 사전적 뜻은 “비밀 또는 위장 첩보 활동을 하는 요원"을 말합니다.
미국햄에게 UC의 의미를 아는지 물었더니, ‘University of California’를 말하느냐고 되묻더군요.
영어로 불법무선국은 ‘pirate’이라고 합니다.
W6KP와의 교신 듣기

2 - 크로스 모드, 크로스 밴드 교신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무선국 허가 신청

무선국 허가 신청을 했습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서류들이 많아서 전부 합치면 얇은 책 두께만큼 되었습니다. 서류 양식을 구하고 전체 서류를 준비하는데 대략 한 달 정도는 걸렸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민간인 신원 진술서입니다. 네 부를 자필로 작성해야 하는데, 어린 학생이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쓰다가 틀리면 다시 써야 합니다. 틀리지 않도록 또박 또박 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아마 10장 이상은 썼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가족 또는 본인의 경력 중에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허가를 해 주지 않았는데, 민간인 신원 진술서를 참조하여 상당히 까다롭게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경찰서에서 직접 사람이 찾아와서 대면 조사도 했습니다. 이념 문제뿐만 아니라 군대 문제로 인해서 허가를 받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 분도 있었습니다.

서류 처리 기간도 고무줄이라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서류가 반려되기 일쑤였죠. 반려가 되면, 검토 중에 적색 볼펜으로 표시한 부분이 많아서 거의 모든 서류를 다시 작성해야 했습니다. 저의 경우, 허가 신청 후 8개월이 지난 다음에 가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허가를 기다리는 중에 신호 한 번 내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1편의 불법 무선국에 대한 변명이 너무 길어졌네요. hi hi

무선국 허가를 신청하면서 송신기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고 그저 출력만 조금 올렸습니다. 출력관으로 많이 사용했던 6146이라는 진공관을 한 개 사용하여 대략 50W 정도의 출력을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크리스탈을 사용하는 간단한 전신 송신기였습니다.

수신기는 Hallicrafters사의 S-40B를 사용했습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장비를 중고로 구입한 것입니다.


Hallicrafters사의 S-40B.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그때의 자격 급수별 허가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3급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급도 한글과 영문의 전신 실기 시험을 통과했지만 3급에게는 전신만 허용하고, SSB 허가는 해 주지 않았습니다. 해 준다고 해도 복잡한 SSB 송신기를 만들 능력도 없었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모드

고정 주파수로 전신만 운용하면 교신의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일요일 오전에 국내국의 SSB 신호가 들리면 교신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SSB 허가도 없었고 주파수도 다르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SSB국들의 교신에 CW국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CW로 브레이크(BK)를 하면 SSB국에서 응답을 해 주었고, 함께 라운드 교신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주파수가 딱 맞지 않아도 상대가 인지하면 수신기의 주파수를 돌려서 수신을 해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일부러 CW국이 없는지 확인도 해 주었습니다.

7MHz용의 크리스탈을 두 개 가지고 있었는데, 7.010과 7.025였습니다. 7.025 부근에서는 항상 중국의 방송신호가 들렸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국내국과의 교신에는 아주 유용했습니다. 어떤 때는 심지어 5kHz 정도 차이가 나도 수신을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당시에 SSB로 나오는 국내국들은 대부분 7.030MHz 부근에서 교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CW국의 참여를 배려한 것이었죠. 아래 로그를 보시면 SC 라고 써져 있는 교신이 SSB와 CW의 크로스 모드 교신이었습니다.


종이 로그북의 일부

하지만 이런 교신은 일요일에, 어쩌다가, 가끔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크리스탈을 이용하여 두 개의 고정 주파수만 송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주파수에서 나오는 CQ에는 응답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크로스 밴드

7MHz에서 CQ를 내다가 응답이 없으면 수신기의 주파수를 다른 밴드로 돌려서 DX 신호를 수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7MHz에서 CQ를 내다가 응답이 없어서 수신기를 14MHz에 맞추고 주파수를 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HM5KY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의 호출부호로 불법 교신을 시도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HM5KY를 부르는 것은 소련의 무선국이었습니다. 잠시 기다렸지만 HM5KY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소련국은 다시 HM5KY를 불렀습니다.

당시의 불법무선국들은 기존 햄들의 호출부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찔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hi

소련: 현재의 러시아 이전에 있었던 소비에트 연방을 줄인 말.
소련은 교신 금지 국가였지만 상대가 불러올 때는 가끔 교신하기도 했습니다.

주파수를 보니 14.020MHz 부근이었습니다. 순간 머리속이 반짝했습니다. 저의 7MHz 송신기의 주파수가 7.010MHz였으니, 고조파인 14.020MHz가 송신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키를 잡고 QRZ을 송출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련국이 응답했습니다. 저는 7MHz에서, 상대는 14MHz에서 송신한 것입니다.

참 황당한 교신이었습니다. 7MHz의 고조파인 14MHz가 송신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든 송신기가 얼마나 허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7MHz용의 안테나라서 14MHz의 신호는 상당히 약하게 나갔을 겁니다. 다행히 상대는 하바로브스크에서 나오는 무선국으로 14MHz에서 교신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거리였습니다. 연이어서 일본국과도 교신을 했습니다.

고조파: 기본주파수의 배수에 해당하는 주파수에서 나오는 신호.
기본주파수가 7.010MHz이면 2배수는 14.020MHz, 3배수는 21.030MHz, 4배수는 28.040MHz가 됩니다.



적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14MHz로 교신한 기록입니다.
주파수는 사각형으로 표시했습니다. 당시에는 교신일지도 정기검사의 대상이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서로 다른 주파수에서 송신을 했지만 실제의 신호는 14MHz의 신호로 교신을 했으니 크로스 밴드 교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난 이후에는 7MHz에서 송신을 하면서도 7MHz와 14MHz를 번갈아 확인해야 했습니다.

메모리 기능도 없는 수신기로 매번 CQ를 낼 때마다 7MHz와 14MHz를 번갈아 확인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3급은 14MHz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허가외 송신으로 경고장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필터 회로를 추가하여 고조파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하게 교신하였습니다.

3 - 7010kHz 수정발진 송신기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아마추어무선기사 시험

저는 아마추어무선기사 3급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자격 급수는 1, 2, 3급의 세 개로 나누어져 있었고, 3급은 전신, 전화급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3급도 전신 실기시험이 필수과목이었는데, 영문뿐만 아니라 한글 전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필기시험이 지금보다 어렵기도 했지만 아마추어무선사 자격시험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전신시험이었습니다.

1급은 50부호(10wpm), 2급은 35부호(7wpm), 3급은 25부호(5wpm)의 속도였습니다. 25부호가 느린 속도이지만, 장점과 단점을 3:1로 송신하면 장단 구분이 잘 되지 않아서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시험장에서는 스트레이트키로 카셋트에 녹음한 것을 들려주는데 음색도 나쁘고 장단비율도 왔다갔다 합니다.

일부러 단어 간격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띄어쓰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단어가 나오면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그 다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I am a boy"를 “Ia ma boy"로 송신하면 어디서 띄어쓰기를 해야 될까 생각하다가 다음 부호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아마추어무선사들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런 것도 시험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송신은 시험관 앞에서 스트레이트키로 직접 송신을 하면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합니다. 자신이 사용하던 키를 가져가도 됩니다. 약간의 연습 시간을 준 후에, 시험관이 녹음 준비를 하고, 전보 용지를 펼치면서, 시작하라고 하면 전보 용지에 적힌 내용을 송신하면서 녹음을 합니다. 어떤 분은 너무 긴장해서 손에서 땀이 뚝 뚝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시험에 합격률도 높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험에 합격한 것은 거의 행운이었습니다.

운 좋게 합격

영문 전신은 불법무선국의 운용으로 1급 이상의 속도라도 자신이 있었지만, 한글은 전혀 연습할 기회가 없어서 겨우 부호만 외운 수준으로 시험장에 나갔습니다. 긴장하면서 수신을 하는데, 한 두 단어를 받아보니 자주 보았던 전파법규의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수신을 하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수신하였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시험에서 그런 행운이 없었다면 그 이후에 대학 입시 준비로 바빠지고, 대학 입학, 군 입대, 취업, 결혼…… 그러다보면 햄을 시작이나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상황이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글 전신 교신

햄을 시작하기 전에는 방과 후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지만 개국 후에는 모든 관심이 교신이었습니다. 트랜스에서 나는 노릿한 냄새는 저에게 강력한 중독제였습니다. 집에만 오면 가방을 던져둔 채 송수신기의 전원을 넣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주파수를 돌려보다가 CQ를 냅니다. 7.025MHz에서는 거의 하루 종일 중국의 방송 신호가 들리기 때문에 대부분 7.010MHz을 사용했습니다. 1977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의 CQ에 HM4LF라는 분이 응답해 왔습니다. 얼마 전에 신규 개설을 했다고 합니다.

국내국과의 전신 교신이 흔치 않은 일이라 반가운 마음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한글 교신을 자주 하지 않다보니, 상대의 송신을 제대로 수신하지도 못하고 송신도 말이 꼬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서툰 한글 전신으로 겨우, 아쉽게 교신을 마쳤습니다.

며칠 후부터 그 분의 신호가 자주 들렸습니다. 그런데 계속 7.010MHz에서 교신을 하였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겨우 두 개의 크리스탈만 가진 저는 너무 답답했습니다. HM4LF님을 호출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주파수를 사용해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도 7.010MHz 크리스탈 하나 뿐이다”

“아이쿠, 이런 ……”

그 후부터는 어쩔 수없이 두 사람이 자주 교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HM4LF님은 프로통신사였기 때문에 전신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저의 한글 전신 실력도 일취월장하였습니다.

정경철오엠님, 어디 계십니까? 다시 전신에서 뵙고 싶습니다.

4 - 전신으로 듣는 로동신문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간첩 신고

우리는 항상 북한과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수시로 미사일을 뻥 뻥 쏘아올려서 주변 나라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 한국에서 사는 것은 정말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한 덕분에 반공에 대한 인식이 철저했습니다. 가끔씩 간첩이나 무장공비 사건이 일어났으니 일반인들도 북한의 존재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반공 의식은 우리의 취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마추어 무선에서 빠질 수 없는 ‘무전기, 모오스, 안테나, 단파’ 이런 단어들은 전부 ‘간첩’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었습니다. 간첩 신고 홍보물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신고 포상금도 상당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은연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저녁 늦게까지 수신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신은 제대로 안됐지만 수신기는 계속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습니다. 잘 안 들리면 스피커에 귀를 갖다대고 온통 그 신호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구둣발채 들어온 서너명의 순경들이 저에게 칼빈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었습니다.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저를 보는 순경도 놀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까까머리의 학생이 앉아 있으니 이상했겠죠.

아버님이 와서 무선국 허가장을 보여주고, 우유 한 잔을 대접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신고를 했겠죠. 늦은 밤에 모오스 소리가 들리니 간첩으로 오인했던 겁니다.

로동신문

그전에는 단파방송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공, 소련의 한국어 방송 그리고 북한 방송도 자주 들었는데, 그 일을 겪은 후로는 그런 방송은 듣기가 겁이 났습니다. 북한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송신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교신은 잘 안되고, 그러다보니 교신보다는 수신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7MHz는 근거리만 들렸지만, 14MHz나 21MHz에서는 원거리 신호가 많이 들려서 수신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수신기를 대충 돌리는 것이 아니고 밴드의 아래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신호를 체크했습니다.

21.100~21.150MHz에서는 느린 전신으로 교신하는 초보 무선국이 많았습니다. 느리지만 영어로 래그추를 하는 사람도 있어서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주파수 부근에서 상당히 강한 신호가 들렸습니다. 속도도 제법 빨랐습니다. 기본적으로 빠른 속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무지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고 한글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21MHz에서 국내국의 신호를 들은 적이 없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국내국 신호가 들려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한글 수신이 잘 안되던 때라 정확한 해독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들리는 단어가 이상했습니다. ‘김일성’, ‘수령’ …… 이런 단어들이 들렸습니다. 얼른 볼륨을 낮추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그 신호는 최소 1시간 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번 사건도 있고 해서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뭔지 궁금해서 계속 다이얼을 그 주파수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전 시간에 1~2시간 정도 수신되었습니다. 상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송신만 하는 신호였습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만 수신했습니다. 계속 수신을 하면서 조금씩 한글 수신 실력도 나아져서, 송신 내용이 로동신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듣지 않게 되고 언제부터인지 신호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신호를 어디서, 누가, 왜, 송신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1MHz는 근거리가 스킵되기 때문에 그 정도 신호였다면 500~1,500km 거리가 아니였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한글 모오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신호에서 사용한 한글 모오스와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모오스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ㅐ’와 ‘ㅔ’라는 복합모음을 하나의 부호로 사용하지만, 그 신호에서는 ‘ㅐ’를 ‘ㅏ’와 ‘ㅣ’로 분리해서 송신하고 있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면, 최초에 한글 모오스를 개발했을 때는 모든 복합모음은 기본모음으로 하나씩 분리해서 사용했습니다. 즉, ‘ㅐ’를 ‘ㅏ’와 ‘ㅣ’로 분리해서 사용했습니다. 로동신문의 그 신호처럼 말입니다. 복합모음 중에서 ‘ㅐ’와 ‘ㅔ’를 하나의 부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라고 합니다. 최소한 1960년대에는 이미 지금의 한글 모오스가 정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중후반에 수신한 신호에서 아직까지 옛날 방식의 한글 모오스를 사용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북한의 모오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은 언어나 관습 등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모오스도 처음 그대로의 형태를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입니다.

5 - 다양한 경고장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경고장이란

아마추어무선은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파법규를 잘 지켜야 합니다. 만약 법을 어기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작은 위반 행위까지 모두 처벌하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가 되니 우선 경고 또는 주의를 주어서 추가적인 위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이때 발행하는 문서가 계고장 또는 주의장입니다. 흔히 경고장이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정외 전파형식 사용

처음 계고장을 받은 이유는 “지정외 전파형식 사용"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3급 아마추어 무선기사에게 전신만 허가해 주었는데 SSB로 교신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년컨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는데 리포트를 교환하는 그 짧은 순간에 딱 걸린겁니다.

아래 그림과 같은 계고장이란 걸 처음 받고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게다가 계고장에는 “한 번만 더 걸리면 재미없을 줄 알아"라는 경고성 문구도 들어있으니 제대로 겁을 먹었습니다.


운용정지

그런데 그런 협박성 경고들이 생각보다 약발이 오래 가지는 않더군요. 채 3주도 지나지 않아서 똑 같은 위반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국내국의 숫자가 적어서 7MHz에서도 국내국의 신호를 듣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쩌다 들리는 SSB 무선국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또 다시 계고장이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한 달간의 운용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3급에게 전신은 허가해 주고 SSB는 허가해 주지 않는 것은, 그때는 별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논리에 잘 맞지 않습니다. SSB 무전기는 만들기 어려우니 실력도 안되는 초보가 만들어서 꽥꽥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인지, 아니면 초보 시절에 전신 실력이나 제대로 닦으라는 배려깊은 친절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덕분에 전신 하나는 제대로 익혔습니다.

호출방법위반

운용정지 처분까지 받았으니 그후로는 위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잘못하면 무선국 폐지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더 이상 경고장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위법에 대한 차이는 있었습니다. 위의 경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고 아래의 내용들은 그것이 위법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위법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위법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주의장을 받았습니다.

오래전에 SK한 HM5JE 오엠이 남해에 계실 때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신으로 스케쥴교신을 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개 한 두시간씩 전신교신을 즐겼습니다.

어느날 스케쥴교신 시간이 되어서 JE 오엠을 호출하였습니다. “HM5JE HM5JE DE HM5KY K” 몇 번이나 호출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도가 떨어졌습니다. “HM5JE HM5JE HM5JE HM5JE DE HM5KY HM5KY K” 계속 호출해도 응답이 없어서 그날은 교신을 포기했습니다.

얼마후 주의장이 왔습니다. 상대방의 호출부호를 3번 이상 불렀기 때문에 “호출 방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정해진 주파수내에서만 운용하면 그 내부에서의 운용은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까지 단속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모든 운용을 일반 무선국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엄격했습니다.

불요통신

또 다른 주의장도 전혀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내용이었습니다. HM5MP오엠과 교신하면서 두 사람만 아는 내용을 농담처럼 얘기한 것에 대해서 “불요통신"이라고 주의장을 받았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십시오. 이게 정말 주의장을 받을 내용인가요.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무선에서 필요한 통신이 무엇이며, 또 불필요한 통신이 무엇입니까.


당시에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명분하에 아마추어무선에 대해서 대단히 비우호적이었습니다. 교신 중에 나오는 “아담"이 음어라고 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업무용 해상국도 아니고 아마추어무선사에게 “불요통신"이라니, 그러면 교신을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라는 것인지, 참… 행정관서의 공권력도 막강하던 시절이라 그냥 조용히 받아들였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행정심판이라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함께 교신한 HM5MP오엠은 이 교신에 대해서 주의장을 받지 않고 저만 받았습니다. 저는 전과(?)도 있고 만만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HM5MP 오엠이 “Military Police"라서 뭔가 뒤로 은밀한 압력을 행사했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드는군요. MP오엠은 항상 자신을 “멍청이 파파"라고 하시는데 연막전술일지 모르니 MP오엠과 만나면 경계태세를 잘 유지하셔야 합니다. hi hi

허가장소외 운용, 목적외 통신

경고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서 변경허가를 받지 않고 운용하여 “허가장소외 운용” 그리고 6편에 나오는 “목적외 통신"까지 참 다양한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겁없이 좌충우돌한 초보햄이지만 정도가 좀 심하긴 했습니다. 경고장을 받은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항상 전파법규를 잘 지키면서 즐거운 교신 하시기 바랍니다.

6 - EL0AP/MM

에피소드 - 1970년대 초보햄의 좌충우돌기

EL0AP/MM

EL0AP는 HL5AP오엠이 라이베리아 선박에서 통신장으로 재직하실 때 사용한 아마추어국의 호출부호입니다. MM(Maritime Mobile)은 해상이동국을 뜻합니다. 라이베리아는 세제, 금융 등 여러가지 혜택을 주기 때문에 해외 대형 선사들이 선박을 등록하는 기국으로 유명합니다. 선사나 선박이 달라도 라이베리아에 등록된 선박에서 계속 일을 하셨기 때문에 동일한 호출부호를 오랫동안 유지하였습니다. AP오엠뿐만 아니라 EL0로 나오는 MM국이 여럿 있었습니다.

AP오엠은 거의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개국 전에는 AP오엠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는데, 개국 후에 알고보니 제가 사는 곳과는 약 200m 거리에 계셨습니다. 저의 아버님과 동갑이셨고 사모님은 저의 어머님과 같은 계꾼이셨습니다.

선박에서는 주로 롱와이어 안테나를 사용하였습니다. 길이가 충분히 길었고 주변이 탁 트인 바다 위에서 나오는 신호라서 생각보다 잘 들어옵니다. 저와는 주로 CW 교신을 많이 했는데 선박통신사들의 특이한 타전 습관 때문에 조금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한 부호의 끝과 다음 부호의 시작을 기준보다 많이 붙여서 타전하는 것입니다. 부호 자체만 듣는다면 상당히 멋있는 박자감을 느낄 수 있지만 기준대로 연습한 아마추어무선사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제 3자 통신

1980년 1월 말경이었습니다. 호주와의 SSB 교신이 끝나자 AP오엠이 저를 호출하셨습니다. 필리핀 해역을 지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둘째 아드님이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전화로 확인하니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이틀 뒤에 다시 교신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틀 뒤, 교신 전에 미리 합격된 것을 확인하고 합격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배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던 한국인 선원들이 자신들의 가족에 대해서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3자 통신"이 불법이란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런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전화로 확인하여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전부 좋은 소식이라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뒤끝이 약간 싸~~~했지만요.

불길한 예감은 항상 그렇듯이… 어김없이 주의장을 받았습니다. 주의장을 자세히 보시면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녹음 내용을 적었는데, 각각 A, B로 적었습니다. A가 저의 송신이고, B가 AP오엠입니다. AP오엠의 송신은 잘 수신했는데 저의 송신은 제대로 수신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감지역

21MHz와 같이 높은 주파수는 원거리교신에는 좋지만 근거리교신은 불감지역(Skip Zone)이 생겨서 불리합니다. 제가 살던 해운대와 부산전파감시국과는 20k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중간에 높은 산이 있어서 직접파로 전송이 되지 않고 전리층 반사는 상당히 약하게 되는 불감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송신하는 내용은 제대로 수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든 또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면역이 생겨서 별로 걱정도 안됐습니다. 그러다가 폐국이 되면 어쩌냐고요?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경고장을 자주 받다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주의장의 참고사항에 보시면 “1981년 1월 31일까지 기준 점수에 도달하면 어떻게 하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반 점수는 1년 이내에 추가 점수가 없으면 리셋됩니다. 0점에서 다시 시작하는거죠. 그래서 심각한 위반이 계속되지 않으면 폐국까지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경험과 불필요한 지식입니다. 법과는 거리가 먼 것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